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총독부 청사 (문단 편집) == 기타 == * 조선총독부 내의 승강기에서 [[독립운동]]을 모의하다가 체포된 사건이 있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6/0010694650|#]] * 다사다난한 한국 근현대사를 반영하듯, 많은 국적의 깃발이 내걸리고 내려간 건물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장기부터 시작해서 [[미군정]] 기간 동안에는 성조기가, 정부 수립 이후에는 [[태극기]]가 내걸렸다. 이후 6.25 전쟁 때 서울이 함락당하면서 인공기가 내걸렸고 수복과 함께 태극기가 다시 걸렸다. 국적 깃발은 아니지만 수복 직후에는 유엔기도 걸린 역사가 있다. * [[김정은]]은 남북관계에서 수틀리는 일이 있을 때마다 서울 함락시 인공기를 내건 것에 매우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2016년 3월에는 탱크병 경기대회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천금같은 기회는 우리가 먼저 선택하게 될 것이라면서 '제일 먼저 서울에 돌입해 괴뢰중앙청에 공화국깃발을 꽂은 영웅 땅크(탱크)병들의 싸움 본때와 투쟁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라고 하였다.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400566612582336&mediaCodeNo=257|#]] 2023년 5월, 평양의 6.25전쟁의 '승리'를 주장하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우리 인민군대가 반공격으로 넘어간지 3일만에 적들의 아성인 서울을 해방하고 괴뢰 중앙청에 공화국 깃발을 휘날린 것은 세계전쟁사에 특기할 전과라고 하시면서 괴뢰 중앙청 깃발대에 공화국기를 띄운 사진도 전시하여야 한다고, 서울해방작전에 대한 해설에서 괴뢰중앙청 깃발대에 공화국기를 띄운 사실을 제일 중요시하여야 한다'라고 하는 등 남한을 정복하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https://www.sp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3|#]] * 철거 과정에서 중앙계단 아래에 89.25㎡(약 27평) 규모의, 모두 4개의 방과 복도로 구성된 [[지하실]]이 발견되었는데 이게 누가 봐도 감금시설에다 [[고문]]실이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방은 한 사람이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0.2평(독방)과 5평, 2평 정도의 크기였으며 각 방으로 통하는 철판문은 14㎝의 두께인데 나무와 모래로 속을 채워 넣어져 있었다. [[방음]]을 위한 목적임을 짐작케 한다. 여기에 잠금장치와 감시창도 있었다. 각 방에 배수로까지 설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광복회 회원들은 배수로를 두고 [[물고문]] 또는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할 때 흘린 피를 물로 닦아내기 위한 시설로 추정했다. 이곳을 공개하기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은 30년 경력의 전직 [[서대문형무소]] [[교도관]] 출신자들 2명을 초빙해 지하실을 둘러보게 하고, 잠금장치와 감시창 등의 시설로 미뤄 일제가 사용한 전형적인 고문·감금실임을 확인받았다고 한다.[[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856701.html|기사]] ||<:> [[파일:external/danceneko.net/P1030691s.jpg|width=500]] || * 해방 당시 한국과 비슷하게 대만 [[총통부(대만)|총통부]] 청사는 [[1949년]]부터 지금까지 [[대만총독부]] 건물을 그대로 쓰고 있다. [[마잉주]] 정권 때부터 이전하자는 논의가 시작되기는 했지만 한국처럼 철거하자는 말은 없다. * 한국처럼 철거 여론이 미미한 이유는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범람연맹]] 또는 [[외성인]]의 입장에서 총독부 건물은 패전국의 상징으로, 승전국인 [[중화민국]]이 획득한 [[전리품]]으로 여기는 입장이다. 한편 [[범록연맹]] 또는 [[본성인]]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청나라]], [[중국|중화인민공화국]]과의 역사적 문제(독립문제, 지방의 소외감, 중앙정부에 대한 반감 등등) 등이 얽혀, [[대한민국|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본의 대만 식민 지배를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현재의 지배자(?)인 [[중화민국]] 역시 자신들의 고장을 지배한/하는 여러 세력들 중 하나로 보기 때문에 대만총독부 건물을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대만총독부 건물은 지금도 잘 쓰이고 있으며 [[타이베이]]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로 [[일본인]] 관광객이 항상 들르는 코스 중 하나. 대만 총통부 건물은 외적으로 상당히 이국적인 독특한 디자인과 밝은 색감으로 눈에 잘 띄어 관광 코스로 부족하지 않다. 게다가 한국처럼 [[경복궁|기존]]의 [[경복궁 광화문|문화유산]]을 헐거나 뒤틀고 지은 것도 아니라서 이걸 헐어버린다고 딱히 뭔가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상 이 마지막 차이가 두 건물의 운명을 갈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공화국 궁전|뭐 건물에서 발암물질이 대량 검출된다면 또 몰라도]]-- [* 대만에서 [[경복궁]]에 비견될만한 고건축물인 대만순무아문 청사 부지에는 대북공회당을 거쳐 현재는 중산홀이 들어서있다.] * 대만총독부 청사와 비교해도 예산을 매우 많이 쓴 편이다. 조선총독부를 제외하더라도 일본이 한반도에 상당한 예산과 많은 일본 기업들이 한반도에 진출하게 했었다. 미군정이 들어섰을때 남한에 [[적산]] 불하된 일본 기업만 2700 여개였다. 아무래도 일본 본토가 식민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관리 문제와 지진의 문제로 수도를 한반도로 옮기려고 했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한반도에 상당히 공들였다는 것. * [[2019년]] [[3.1절|3월 1일]], [[KBS 뉴스 9]]에서는 광화문에서 야외진행을 하면서 조선총독부 청사를 [[증강현실]]로 재현했다. 이 날 보도는 조선총독부가 3.1 운동 주도자급 인물 140명을 계보도 형식으로 작성한 문서를 발굴한 단독 보도를 전하면서 총독부 청사 건물을 그래픽으로 재현한 것이다. [[https://youtu.be/1W2CSkE0qjQ|#]] * 한국조경학회지 <근대 역사 경관의 보존과 철거 - 구 조선총독부 철거 논쟁을 사례로 ->에 체계적으로 관련 사건의 흐름이 정리되어 있다. * [[한양대학교]] 서울캠퍼스의 [[한양대학교/서울캠퍼스/시설#s-1.1.2|2009년에 완공된 신본관]]이 이와 비슷해 초기에 한양총독부라고 비웃음을 당한적이 있다. 다만 이것은 한양대학교의 전신학교인 동아공과학원을 모티브로 해서 지은 것이다. [[분류:조선총독부]][[분류:대한민국의 없어진 건축물]][[분류:1926년 건설]][[분류:1996년 해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